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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 호텔 커피숍. 균형 잡힌 체격의 노신사가 1층 로비에서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왔다. 조중건 대한항공 고문. 올해 우리 나이로 94세인데, 바른 걸음걸이가 건강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일찍 오셨네요.” “선생님 뵙는데, 당연히 일찍 와야지요.”
그가 언급한 선생님은 106세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조 고문은 중앙고교 재학 때 당시 교사 우리부산저축은행 로 재직했던 김 교수로부터 철학, 윤리를 배웠다.
“선생님께서 ‘겸손해라’ ‘최선을 다해라’ 당부하신 말씀을 평생 지키고자 했습니다. 고교 3학년 때 6·25전쟁이 나서 졸업을 못한 채 선생님과 헤어졌어요. 그 이후 뵙지 못했으나 늘 그리웠습니다. 더 늦기 전에 뵙고 싶어요.”
현재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조 고문은 현금영수증 사업자 최근 귀국해 서울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다. 그는 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 문화일보 기자에게 은사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청했다.
김 교수는 조 고문의 만남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1932년생 제자라니…, 하하.”
이날 약속한 시간에 맞춰 김 교수가 나타나자, 조 고문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김 교수는 특 연체자휴대폰개통 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제자를 껴안았다.
“내가 오면서 생각하니 우리 둘이 200세가 되더군요.”
김 교수가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트리자, 조 고문도 함께 웃었다.
“우리 나이로 106세이신데,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숫자가 아니지요. 그 세월 동안 선생님께서 우리가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도록 지혜를 현지 주셨고, 그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뤄진 것이지요.”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1시간 반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김 교수는 몸을 비스듬히 젖힌 자세였고, 조 고문은 의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시종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유머가 넘쳤다. 두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 “어때요? 누가 젊어 보여 소득증비서류 요? 비슷하지요?”라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조 고문도 위트가 몸에 배어 있었다. 기자가 커피를 시키겠다고 하자, “나는 차 말고 돈으로 줘요”라며 싱긋 웃었다.



김형석 교수가 세계 최고령 저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책 ‘백년의 지혜’를 조중건 고문에게 주며 서명한 내용.


두 사람은 중앙고 창립자인 인촌 김성수에 대한 추억을 공유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그 다음 날 학교장을 찾아갔어요. ‘학교 예금을 은행에서 찾아 교직원에게 3개월씩 월급을 먼저 지급하면 좋겠다’라고 제안했지요. 내 나이 30세 때이니 겁이 없었던 것인데, 창립자인 인촌 선생이 그걸 받아줬어요.”
조 고문은 인촌이 교정 잔디밭의 잡초를 직접 뽑고 화장실에서 오줌을 손수 퍼와 물에 타서 뿌리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중앙고 교사 시절에 자신이 했던 결심을 되돌아봤다. ‘훌륭한 제자를 키워 나라다운 나라,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내가 해방 직후 고향(평안남도 대동)에서 동네 선배 김성주를 만났잖아요.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공산당 행동대원 같았지요. 그해 10월에 김일성 장군 환영회가 열렸는데,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둔갑해 나타났어요. 소련 군정이 가짜를 내세운 걸 알게 됐지요. 여기선 나라다운 나라를 볼 수 없겠구나, 싶어서 남으로 온 거예요.”
조 고문은 6·25전쟁 때 북한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지하실에 3개월 동안 숨어 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누군가의 밀고로 인민군에 붙잡혀 죽는구나 싶었는데, 당시 좌익이었던 친구가 나타나 ‘중건아, 빨리 도망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살아남았어요.”
제자는 곡진한 어투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상세히 전했다. 전쟁 때 자진 입대해서 육군 통역장교 등으로 근무한 것, 1955년 제대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한 것, 귀국 후 형(고 조중훈 전 대한항공 회장)이 창업한 한진상사에 합류한 것 등. 스승은 ‘응, 응…’ 하며 일일이 맞장구를 쳐주고 가끔 질문할 때는 존대어 어미를 썼다.
“형님은 몇 살 위예요?”
“열두 살 위입니다. 중간에 누님 넷이 있지요. 형님과 저는 참 배짱이 맞았습니다.”
조 고문은 베트남전에서 미군 물자를 운송하며 ‘외화 획득’을 했던 걸 되돌아봤다. 그는 민간인으로 전쟁터에 가서 수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능통한 영어와 타고난 기지로 미군의 신뢰를 얻어냈다(그의 친구인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대사는 어느 글에서 그에 대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인들의 특성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 월남서 번 돈으로 대한항공을 인수한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1948년 설립된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조 브라더스가 맡아 달라’고 했어요. 당신이 죽기 전에 국적기를 꼭 타보고 싶다며 간곡히 청했지요.”
조 고문은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1952년 광주 포병학교에 근무할 때 교육을 받으러 온 박정희 대령을 처음 만났고, 그 이듬해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병학교에서 한국군 장교들을 가르칠 때 그를 또 만났다. 그런 인연으로 박 전 대통령은 그를 영어 이름 ‘찰리(Charlie)’로 부르며 허물없이 지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한 항공사를 ‘조 브라더스’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무분별한 압력 탓에 어려운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기업 하기 힘들었어요.”
제자는 스승에게 짐짓 하소연조로 말했다. 스승은 “대한항공과 같은 기업들을 우리 정치가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제자를 어루만졌다.
대한항공 부사장, 한일개발 사장, 대한항공 사장을 거쳐서 부회장을 지낸 후 1990년대 말에 하와이로 가게 된 것에 대해 조 고문은 “조카들이 대학 졸업했으니 부딪치지 않으려 떠난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내가 대한항공을 930여 번 탔더라”며 “국내선도 꼭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일을 돕고 있는 이종옥(80·아가페복지법인 이사장) 씨는 “강연을 다니시며 그 많은 집필 활동을 하시는 걸 보며 늘 경탄한다”라고 했다.
조 고문은 “선생님 집필을 지원하는 뜻으로 약소하나마 1000만 원을 드리고 싶다”라고 했다. 이 씨는 고마움을 표하며 김 교수가 이런 후원금을 받으면 장학기금으로 써왔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감사하다. 서대문구에 생긴 ‘철학자의 길’에 시비를 세우는 일에 예산이 필요하다던데, 거기에 쓸 지 판단해 보자”라고 했다.
조 고문도 미래 세대를 위해 장학회를 운영해 왔다. 그는 “우리 젊은이들이 현실이 힘들어도 꿈과 희망을 갖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 나가는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국내 정치 상황을 보면 좀 걱정이 되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지켜갈 것으로 믿는다”며 “그래야 세계 속에서 더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도 세계사적으로 공산주의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기라며 우리나라의 좌파는 그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좋지 않게 보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나는 기성세대가 잘못한 것도 분명히 지적하는데…”라며 웃었다.
그는 우리 정치가 대립과 갈등에 빠져 있는 것은 국내 권력 싸움에 매몰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운동권과 법조인들은 세계 안의 한국을 보며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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